말씀묵상

[2022. 1. 6, 목] 故 김순주 스테파노 장례미사

0 5,213 2022.01.06 07:19

열흘 전으로 기억한다날씨가 매우 쌀쌀한 오후,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야외 구유가 있는 성모상 앞에서 어떤 자매님이 너무나도 간절히 기도하며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셨다옆모습만 보아도 그 모습에는 간절함과 사연이 가득히 묻어 있었다가까이 가서 보니 정순옥(안젤라) 자매님이었다저를 보자마자 남편 스테파노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다나는 며칠 전에 지인을 통해서 소식을 접하고 있는 터라 기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자매님을 위로하고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에는 간절함과 초조함이 있었지만 차분하였다.

 

입관식을 하는데 안젤라 자매님은 그 슬픔을,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울음을 참지 말고 터트리고, 하느님이라도 원망하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마는 참는 모습 속에서 헉하고 올라오는 자매님의 탄식과 오열은 이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가족들에게 대단한가를 느끼게 하였다.

 

불교

인과응보 :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름

 

가톨릭

상선벌악 :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일.

 

종교마다 조금의 차이점은 있지만 죽음을 삶의 결과로 이해하려고 했고, 그래서 착하게 살도록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죽음 앞에서는 우리는 이러한 물음을 던진다왜 나이고, 우리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종교적으로 믿어왔던 교리들도 신앙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사고는, 병은, 죽음은 삶의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한평생 못살았다는 하느님 심판의 판결문이 아니다.  만일에 죽음이 판결문이라면 33년의 짧은 생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사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죽음은 끝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장례식마저도 죽은 영혼이 산사람들의 남은 인생에 걸림돌이 되거나, 분노가 쌓여 액운이 끼게 하거나, 영혼이 불쌍하여 황천에서 머물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죽은 영혼을 기억하는 장례보다, 남아 있는 자에게 해가 되지 않고, 분풀이하지 않게 하려고 장례식마저도 남아 있는 자들의 사고와 형식에 따라 치른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은 인생의 허무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역사로 기억되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신앙에 대한 불신을 갖지 말아야 한다.

 

가장 고귀하고 값진 희망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순주(스테파노)형제의 죽음에서, 아버지의 죽음에서 어떤 죽음의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시기에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두 분의 소식을 접하였다.

 

한 분은 건강하고 아무 지병도 없었지만, 타지역 여행 중에 코로나 확진을 받고 격리수용되다가 갑자기 안좋아져서 중환자실에서 영상으로 가족들과 통화하고 죽음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격리된 죽음, 그리고 혼자 전염병의 결과물로 불길로 들어가 한 줌의 재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 지인이었다. 장례의 절차가 코로나19 죽음의 모습이다.

가족들은 슬픔이 뭔지?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도 몰랐다. 돌아가신 얼굴을 보아야 슬픔도 생기고, 원망도 생기는 법인데 말이다. 결국 故人 000의 항아리 하나만이 한평생을 살아왔던 가족들과 헤어짐의 상징으로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한 분은 오늘 우리가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김순주(스테파노)형제이다.

내가 처음 소식을 접할 때는 코로나19 확진 판정받아 격리되었다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임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는 음성으로 판명되어 우리는 정상적인 장례식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슬퍼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수 있는 것이 무슨 은총일까?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는 이 또한 은총이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야 한다.

 

오늘 봉헌되는 장례미사에서 유가족들은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기억은 용서와 화해

예수님은 용서를 통하여 제자들의 새로운 삶을 펼쳐주셨고, 용서받은 제자들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초석이 되었다. 그러기에 가족들도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방식으로 이 미사를 통하여 남편과 아버지와 풀리지 않았던 삶의 실타레와 매듭들을 풀고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은 아버지의 장례를 통한 가장 큰 은총의 시간이다.

 

둘째 기억은 사랑

주님은 이별의 시간에서 당신께서 모든 이에게 베풀었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시며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우리는 이 기억을 매일 미사성제를 통하여 재현하고 있다. 그래서 스테파노 형제의 마지막 미사는 남편의, 아버지의 사랑의 흔적을 아내와 아들로서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서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 앞에서 떠나는 고인은 아름다웠던 사랑의 흔적을 마음에 담고 떠나고,  남아 있는 가족은 부족했던 삶을 반성하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보내 드리는 것이다.

 

여보! 아버지!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김순주 스테파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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